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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Black Coffee Clipping - a Insight a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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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파델 : 아이팟의 아버지, “혁신적인 제품은 당장 필요한 진통제와 같다”
[[☕LongBlack Clipping]]
2025-02-24
롱블랙 프렌즈 C ‘나의 세계’를 튼튼히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끈기 있게 붙잡아 벼린 끝에, 빛나는 결과물을 완성하는 이들이죠. 이들의 여정은 때로는
clippings

롱블랙 프렌즈 C 

‘나의 세계’를 튼튼히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끈기 있게 붙잡아 벼린 끝에, 빛나는 결과물을 완성하는 이들이죠. 

이들의 여정은 때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죠. 한편으로는 궁금해져요. 이들은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비결을 직접 물어보기로 했어요. 자기만의 시대를 만드는 사람들을 찾았죠. 그들과 나눈 이야기, 앞으로 5일간 <빌더스Builders 위크 : 시대를 만드는 사람>로 전하려 해요.

첫 번째 주인공은? 애플의 시대를 연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파델Tony Fadell 빌드 콜렉티브Build Collective CEO예요.

토니 파델 빌드 콜렉티브 CEO 

1969년생의 토니 파델은 실리콘밸리에서 30년간 일한 엔지니어예요. 그는 2001년 파산 위기의 애플을 되살린 휴대용 음악플레이어 ‘아이팟iPod’을 만들었어요. 2007년엔 ‘아이폰’을 스티브 잡스와 함께 개발했고요. 

창업가로도 성공했어요. 그가 2010년에 세운 네스트 랩스Nest Labs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대표 제품은 스마트 온도조절기Thermostat였죠. 이 회사, 2014년 구글이 32억 달러(약 4조6000억원)에 인수했어요. 

커리어만으로도 압도되는 기분, 긴장하며 인터뷰에 나섰어요. 하지만 화면에 나타난 그는 소탈해 보였어요. 검은 티셔츠 차림에 은색 헤드폰을 쓴 모습이었죠. 그는 자신을 “편하게 토니로 불러달라”고 했어요. 

토니에게 먼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물었어요. 그는 이렇게 답했죠.

“저는 제 자신을 ‘빌더’라고 불러요. 단순히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은 아닙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그게 실체를 갖게 하고, 또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Chapter 1.
할아버지와 새집을 만들던 소년 

빌더라는 정의를 듣자 궁금해졌어요. 토니가 가장 처음 만든 제품이 뭔지 물었죠. 화려한 제품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답은 예상과 달랐어요.

“제 첫 프로젝트는 ‘새집bird house 짓기’였어요. 5살 때 할아버지와 함께 만들었죠. 할아버지는 제게 망치 같은 도구를 쓰는 법,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할아버지가 목수였냐고요? 아뇨,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그저 대공황 시대*를 통과하며 물건을 아끼는 게 익숙해진 거였죠. 종종 토니에게 “새 물건 사지 말고 고쳐 쓰라”고 말씀하셨대요.
*1929년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경제 공황. 금융 시장의 혼란과 실직 사태가 일어나 여파는 약 10년간 이어졌다. 

그럼, 토니가 혼자서 처음 만든 전자제품은 뭐였을까요? ‘음악 플레이어’였어요.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77년, 라디오 겸 전자시계를 분해해 만들었죠. 헤드폰 연결 잭을 꽂을 수 있는 부품을 더한 거였어요. 부모님 몰래 밤에도 헤드폰으로 라디오 속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죠. 

“꽤 창의적이지 않나요? 할아버지는 자연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셨어요. 즉, ‘저도 원하는 걸 충분히 만들고 고칠 수 있다’고 가르치셨죠. 이 가르침이 저를 제품 엔지니어의 길로 이끌었어요.”

토니가 엔지니어의 꿈을 본격적으로 꾼 건 1981년, 초등학교 6학년 때예요. 이때 그는 애플 컴퓨터를 손에 넣었어요. 자연스레 코딩과 소프트웨어 만드는 일에 빠져들었죠. 

“오늘날 사람들은 ‘내가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누군가가 만든 걸 보고 살 뿐이죠. 하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원하는 걸 직접 만들었어요.

저도 처음에 배운 건 같아요. ‘필요한 걸 만든다.’ 도구만 바뀌었을 뿐이죠. 못과 망치에서 컴퓨터 언어로요.”

토니 파델. ‘아이팟의 아버지’라 불리는그는 “나의 빌더 DNA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토니 파델

Chapter 2.

무작정 앞서간다고 고객이 따라오진 않는다

토니는 1987년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어요. ‘만들기 열정’을 더욱 불태웠죠. 남들은 파티를 다닐 때 매일 지하실에서 컴퓨터만 붙잡았어요. 컴퓨터칩을 만들어 애플에 납품하고, 작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개발자의 길을 걸은 토니의 다음 행선지, 역시나 실리콘밸리였어요. 1991년, 22살이 된 토니는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에 입사해요. 애플의 PC 매킨토시Macintosh 개발에 참여한 천재 팀원들이 나와 차린 회사였죠. 

토니는 제너럴 매직에 자기 커리어를 걸었어요. 3년 만에 수석 엔지니어 자리에 오를 정도였죠. 그리고 ‘세상을 바꿀 뻔한’ 제품을 내놓았어요. 1994년 아이폰과 비슷한 컨셉의 ‘매직 링크Magic Link’를 만들었거든요. 

매직링크는 터치스크린이 달린 휴대용 기기예요. 전화와 이메일, 비행기 표 구매와 게임까지 가능하게 했죠. 일종의 ‘스마트폰’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매직링크는 혁신을 일으키기는커녕 팔리지도 않았어요. 이유는 알만 해요. 인터넷도 많이 보급되지 않은 1990년대 초반에 너무 앞선 제품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사실상의 아이폰을 13년 일찍 만들었어요. 하지만 실패했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거든요. 사람들은 매직링크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도 못했죠.”

이때 그는 ‘혁신’과 ‘허황’의 차이를 깨달았어요. 기술적으로 아무리 멋져 보여도, 시장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면? 소용없단 거였죠. 

“대중이 문제를 느끼지 않으면, 제품은 팔리지 않아요. 마케팅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죠. 이때 저는 ‘혁신적인 제품은 기술과 사회가 같은 속도로 걸을 때 탄생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1994년 제너럴 매직이 출시한 ‘매직 링크’. 일정관리와 이메일 확인 및 전송 등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용 개인 기기였다. 하드웨어 제조는 소니가 맡았다. ⓒoldcomputers.net

Chapter 3.

혁신적인 제품은, 비타민이 아닌 진통제다

토니가 깨달은 ‘혁신적인 제품’은 뭘까요? 토니는 자기가 생각한 답을 먼저 들려줬어요. 

“혁신은 비타민이 아닌, 진통제pain killer 같은 제품에서 나옵니다. 비타민은 몸에 좋지만, 꼭 먹을 필요는 없죠. 하지만 진통제는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고통을 없애줘요. 즉, 당장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제품이죠. 그런 제품이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세상을 바꿉니다.”

토니는 이 깨달음을 애플의 ‘아이팟’을 만들면서 얻었다고 했어요. 자신의 불편을 해소하고 싶어 만든 게 아이팟이었다면서요. 이게 다른 사람의 고통도 풀어줬다는 거예요. 

때는 1999년 3월, 토니가 자신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빈 CD’로 옮기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사람들은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어요. 만약 내가 원하는 노래만 듣고 싶다면, CD를 매번 바꾸거나 빈 CD에 원하는 노래를 리핑ripping*해야 했죠.
*CD에 저장된 비디오나 오디오 데이터를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복사하는 과정. 

“당시 저는 취미로 디제잉DJing을 했어요. 가방에 CD를 수십장 넣고, 장비까지 들자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생각했죠. ‘이 모든 걸 더 간단하게 만들 순 없을까?’라고요.” 

토니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①많은 곡을 담을 수 있는 기계. ②음악을 쉽게 사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두 가지가 있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있겠다 싶었죠. 

퓨즈를 창업한 토니가 구상했던 휴대용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매킨토시와 연동되고, 온라인 음악 스토어에서 음원을 살 수 있는 기기다. 이 아이디어는 아이팟 개발의 토대가 됐다. ⓒ토니 파델

영감을 얻은 토니는 당장 회사부터 세웠어요. 1999년 7월, ‘퓨즈 시스템즈Fuse Systems’라는 회사를 만들었죠. 하지만 창업하자마자 닷컴버블*이 터졌어요. 투자설명회를 80번 다녔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죠.
*미국, 독일, 한국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1995년~2000년 사이 발생한 인터넷 기업 중심의 투자 과열 현상. 

하지만 이때 토니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스티브 잡스였죠. 

당시 애플 상황을 알려드릴게요. 매킨토시의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2%. 적자도 심해 파산 직전이었죠. 돌파구를 찾던 스티브 잡스, ‘PC와 연결되는 놀라운 기기를 만들면 사람들이 매킨토시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어요.
*아이팟 1시대는 매킨토시와만 호환됐고, 3세대부터 윈도우 PC와도 호환 가능해졌다. 

극적으로 2001년 1월 애플에 합류한 토니. 3개월 만에 스티로폼으로 모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계획을 설명했죠. 기기 절반을 차지하는 큰 화면과 간단한 조작 버튼, PC와의 연계 방법까지요. 

2001년 3월 토니가 스티로폼으로 만든 아이팟 모형. 토니는 이 모형을 들고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팟 개발 계획을 설명했다. ⓒ토니 파델

그렇게 통과된 프로젝트는 2001년 10월, ‘아이팟’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1000곡까지 넣을 수 있는 저장 용량, 음악을 빠르게 고를 수 있는 ‘클릭 휠Click Wheel’이 특징이었죠. 또 음원은 아이튠즈iTunes라는 소프트웨어로 다운받고 관리하게 했어요.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예요. 아이팟은 출시 5년 만에 1억 대 팔린 제품이 됐어요. 덕분에 애플의 연 매출은 2002년 58억 달러(약 8조3400억원)에서 2007년 260억 달러(약 37조4000억원)로 늘었죠. 그중 33.8%가 아이팟 매출이었어요. 

“혁신적인 제품은 업계나 기술을 몰라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이 제품을 쓸 때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야 하죠. 이걸 해내면 누구나 그 제품을 원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소비자의 삶과 산업도 변하죠. 그게 바로 혁신입니다.”

토니는 애플에서 1세대부터 18세대까지의 아이팟을 만들었다. 아이팟은 애플의 매출을 끌어올리며, 애플을 컴퓨터 회사에서 디지털 기기 제조 및 앱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시켰다. ⓒ빌드 콜렉티브

Chapter 4.

매일 하는 불평이, 곧 당신의 아이디어다

‘소비자가 초능력을 느끼게 하는 게 혁신이다.’ 멋진 말이지만 막막해요. 그런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토니는 제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매일 하는 불평을 알아차리는 것noticing에서 아이디어는 시작된다”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가 거슬리면, 그걸 없앨 방법을 찾는 거죠. 샤워할 때 수도꼭지를 조금만 돌려도 너무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진다면? 이걸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 보는 거예요. 

“아이디어의 시작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문제를 반복 경험하기에 문제가 있어도 습관처럼 받아들여요. 

평소에 당신을 괴롭히는 걸 주목해 보세요. ‘그냥 따라야지’라며 불평하지 말고, 바꿀 방법을 찾는 거죠. 그게 세상을 바꿉니다.”

그러면서 토니는 자신의 또 다른 경험담을 들려줬어요. 

2011년 그가 만든 ‘네스트 학습형 온도조절기Nest Learning Thermostat’ 이야기예요. 가정집에 설치된 온도조절기가 내 생활 패턴에 맞춰, 집안 온도를 조절해 주는 제품이죠. AI가 뜨기도 전인 14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아이들도 이해할 만큼 쉬운 스마트홈 기기”라는 평을 받았죠.

이 제품도 ‘일상의 괴로움’에서 시작됐어요. 토니는 늘 집안이 덥거나 추운 게 싫었어요. 특히 겨울에 집에 들어갈 때마다 벌벌 떨면서 온도조절기를 켜는 게 고통스러웠죠. 그게 AI 온도조절기 아이디어로 이어졌어요.

“애플을 떠나 온도조절기를 만들겠다고 할 때는 다들 말렸어요. ‘그 시장엔 새로울 게 없다’고들 했죠. 하지만 저는 다들 집 온도로 괴로웠던 적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때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진통제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주변의 반대를 뚫고 만든 네스트, 어떻게 됐을까요? 창업 3년 만인 2013년에 3억 달러(약 4300억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2014년 1월엔 32억 달러(약 4조6000억원)에 구글로 인수됐죠. 지금은 ‘구글 네스트’라는 이름의 스마트홈 기기를 모두 끌어안은 브랜드가 됐고요.
*비즈니스 인사이더 추정치. 

네스트 학습형 온도조절기 1세대. 아이팟처럼 직관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과 쉬운 사용법이 특징이다. ⓒ네스트

아이디어를 찾았다면, ‘보도자료’를 미리 써봐라 

하지만 토니는 말해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해도, 결과물은 늘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다”고요. 즉, 상상할 때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이디어는 떠올렸을 때 가장 근사합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게 바뀌죠. 잘 만들다가도 시간에 쫓기면 핵심 기능이 사라질 때도 있어요. 문제는 그럼 그 제품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는 거예요.” 

이 문제를 막기 위해 토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어요.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보도자료를 써보라”고 했죠*. 이걸 먼저 쓰면, ‘제품이 나올 때까지 꼭 남아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정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등 실리콘밸리 리더들이 일하는 방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리 쓰는 보도자료의 분량은 한 페이지 정도. 제품의 핵심 컨셉과 필수 기능을 담아야 해요. 그게 제품을 만드는 ‘이유’이자 ‘비전’이 되거든요. 버튼 수나 제품의 크기, 가격은 바뀔 수 있어요. 하지만 제품을 만든 이유만큼은 꼭 지켜야 하죠.  

예시를 들어볼까요? 토니가 제작에 참여한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의 보도자료를 찾아봤어요. 

**“애플은 오늘 혁신적인 휴대전화, 터치가 되는 큰 화면의 아이팟, 데스크톱 수준의 인터넷 작업이 가능한 통신 기기라는 세 가지 제품을 작고 가벼운 하나의 휴대용 기기로 합친 아이폰을 출시했습니다.”
**_2007년 1월 9일 애플 보도자료 

아이팟의 편리한 조작과 컴퓨터 기능이 합쳐진 터치형 휴대전화. 이게 아이폰을 만든 이유였죠. 아이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 내용을 미리 적어두고 결과물을 향해 달린 거예요. 

“저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할 때마다 보도자료를 써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게 남아있어야 할지 미리 정리할 수 있죠. 저는 다른 제작자에게도 이렇게 말해요. ‘미리 쓴 보도자료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면 비전을 이뤄낸 것’이라고요.”

토니는 특히 버전 1 제품을 만들 때 보도 자료를 먼저 쓰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은 아이폰의 비전을 현실화해낸 핵심 인물들. 왼쪽부터 필 실러, 토니 파델, 조니 아이브, 스티브 잡스, 스콧 포스탈, 에디 큐. ⓒ토니 파델

Chapter 5.

오래가는 혁신은, ‘걸림돌’을 없애는 데서 나온다 

토니는 마지막으로 강조했어요. 제품을 만들고 끝내면, 혁신은 ‘한 철 장사’로 끝날 거라고. 혁신을 끈기 있게 끌고 가려면 고객이 마주하는 ‘걸림돌’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죠.

“발전된 기술을 모아서 내놓으면 그건 ‘진화evolution’예요. 반면 ‘혁신innovation’은 이 모든 기술을 결합해 매우 간단하게simplify 만들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요.”

즉, 고객이 제품을 쓰는 모든 순간이 매끄러워야 한다는 말이에요. 성공 기준을 ‘고객이 제품을 사는 순간’에 두지 말라고 하죠. 

“적잖은 제조사들은 ‘사용자 경험’을 생각할 때 ‘고객이 우리 제품을 만지고 사는 순간’을 떠올려요. 하지만 사용자 경험은 그 물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과정입니다.”

그는 네스트에서 만든 온도조절기를 다시 예로 들었어요. 그가 만든 온도조절기는 경쟁 제품보다 쓰기 쉬웠어요. 버튼을 누르는 대신, 아이팟처럼 다이얼을 돌려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죠. 자동 조절도 가능했고요. 설치도 고객이 혼자서 20분이면 할 수 있는 정도였죠. 

그런데 막상 시제품을 테스트하니 고객 반응이 달랐어요. 이걸 설치하는 데 1시간씩 걸렸던 거예요. 이유는 간단한 곳에 있었어요. 다들 드라이버를 찾거나 사느라 30분씩 시간을 더 썼던 거였어요. 기존 온도조절기를 떼려면 그에 맞는 드라이버가 필요했거든요. 

드라이버가 걸림돌인 걸 발견한 토니, 아예 제품 패키지에 드라이버 세트를 더했어요. 일자, 십자드라이버 등 네 가지 종류의 드라이버를 쓸 수 있게 했죠. 

“드라이버 때문에 헤매는 순간 역시 ‘우리 제품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제품을 주문할 때부터 가동할 때까지 모든 순간이 매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제품이 간단해도, 그 과정이 복잡했다면 다시 찾지 않을 테니까요.

실물 제품을 만나는 건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에요.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 팔 때는 전체를 고민해야 합니다. 고객이 이 제품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설치하고, 쓰고, 고치고, 버리는 여정까지 떠올릴 수 있어야 하죠.” 

네스트 1세대를 사면 함께 제공됐던 오리지널 드라이버. 자석 팁을 이용해 네 종류의 드라이버를 갈아 낄 수 있게 만들었다. 제품 설치 후에도 일상에서 사용되며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네스트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

제품이 만들어지는 여정을 새롭게 열어온 토니, 이제 그는 또 다른 빌더로 활약하고 있어요. 2017년부터 ‘빌드 콜렉티브’란 이름의 글로벌 투자 자문회사를 운영 중이죠. 

그가 지금 고민하는 건 자연의 고통이에요. 그래서 환경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제안하는 기업을 돕고 있죠. 식물성 대체육 제조사인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 폐기물 재활용 방법을 개발하는 테라사이클TerraCycle 같은 곳을 주목하고 있다고 해요. 

토니는 인터뷰의 마지막까지 강조했어요. “앞으로도 ‘미래를 만드는build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죠. 

“저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역할이나 직함은 달라질 수 있어요. 제품 제작과 회사 운영, 투자와 멘토링으로 넓어지고 있을 뿐이죠.

이미 많은 것들이 만들어져서 더 이상 혁신은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우리 주변엔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도 그만큼 많이 남아 있는 거죠.” 

토니 파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제품들. 토니는 실리콘밸리에서 3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 주위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빌드 콜렉티브

롱블랙 프렌즈 C 

“세상을 바꾸는 걸 만든다.” 토니와 이야기하다 보니, 그가 왜 스스로를 빌더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어요. 동시에 나도 빌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불평하는 그 순간, 새 시대를 여는 기회가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

롱블랙 피플, <빌더스 위크> 첫 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혹시 주변에 뭔가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떠올랐다면, 이 노트를 공유해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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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썬더 : 싸구려 취급받던 초코바가, 30년 만에 ‘판매 1위’ 찍기까지
[[☕LongBlack Clipping]]
2025-02-20
롱블랙 프렌즈 K “사장님, 방금 그 결정 취소해 주세요.”한 사원이 사장실에 뛰어 들어가 ‘결사반대’를 외칩니다. 회사의 결정이 잘못됐다면서요. 자기 말을 한 번만 믿으면,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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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K 

“사장님, 방금 그 결정 취소해 주세요.”

한 사원이 사장실에 뛰어 들어가 ‘결사반대’를 외칩니다. 회사의 결정이 잘못됐다면서요. 자기 말을 한 번만 믿으면,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거라고 호언장담해요.

직장인의 꿈속 이야기 아니냐고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예요. 입사한 지 2년도 안 된 영업사원이 사장에게 매달렸거든요. 그리고 이 결정이, 회사에 ‘국민 브랜드’를 선물했죠.

심지어 이 회사, 영업사원의 정신을 30년째 계승하며 “사장을 만만하게 여기라”고 강조해요. 어딘지 궁금하다고요? 10년 차 식품 기업 MD 출신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본식품비밀노트’가 이야길 들려준대요.

일본식품비밀노트

여기, 30년 만에 ‘판매량 1위’ 국민 과자가 된 초코바가 있습니다. 원래는 불량식품 취급받던 존재였죠. 

도쿄의 과자 회사 유라쿠제과有楽製菓의 히트작 ‘블랙썬더Black Thunder’ 이야기예요. 한 개에 40엔(약 380원)인 블랙썬더는 2024년 기준 일본에서 해마다 2억 개씩 팔리고 있습니다. ‘한 개만 먹어도 배부른 가성비 디저트’라 불리면서요. 

그런데 이 초코바가 처음부터 인기를 얻은 건 아녔어요. 하루에 100개도 안 팔려 생산 중단까지 된 적도 있죠. 이 초코바의 운명을 바꾼 건, 한 영업사원의 ‘울화통’이었어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죠. 블랙썬더가 그린 역전극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Chapter 1.
‘과자 납품’ 말고 브랜드를 꿈꾼 회사

돈 많이 버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업가들이 있어요. 유라쿠제과의 2대 사장, 가와이 토모하루河合伴治가 그런 사람이었죠. 과자 회사가 아니라 ‘브랜드’를 갖고 싶었거든요.

유라쿠제과는 1955년 도쿄에서 납품용 과자 제조사로 시작했어요. 창업자는 가와이 시료河合志亮. 전후 과자 소비가 늘자, 기회를 엿본 뒤 제조사를 만든 거예요. 40년 넘도록 프레첼pretzel이나 누가 크래커nougat cracker 등을 만들어 과자 브랜드에 납품했죠. 

하지만 1988년 아버지에 이어 사장직에 오른 토모하루는, 일에 재미를 못 붙였어요. 도무지 성장한다는 기분을 못 느꼈죠. 열심히 과자를 만들어봤자 다른 회사의 라벨이 붙었으니까요.

“유라쿠제과만의 주력 상품을 만들겠다”. 1991년 토모하루는 전사회의에서 선언했어요. 그러곤 땅콩 초코바 ‘초코넛3’를 내놓았죠. 고객 반응은 미지근했어요. 스니커즈Snickers 같은 기존의 초코바와 맛에서 큰 차이를 내지 못했거든요. 

토모하루의 야심작을 구원한 건 다름 아닌 20대 공장 직원이었어요. 하루는 초코넛3를 개량한 시제품을 가져옵니다. 땅콩 가루와 캐러멜 대신, 잘게 부순 코코아 쿠키와 쌀 튀김을 섞은 제품이었죠. 겉면은 다크 밀크 초콜릿으로 코팅했고요. 

어떤 점이 달랐냐고요? 크게 두 가지였어요. ①쿠키 덕분에 식감이 더 바삭해졌고, ②쌀 튀김은 포만감을 줬어요. 토모하루는 이 제품은 경쟁사 과자와 붙을만하다고 봤습니다. 곧장 제품화에 들어가요. 그렇게 1994년 탄생한 게 바로 블랙썬더였죠.

이름은 왜 블랙썬더였을까요? 이 초코바를 아이들이 찾아주길 원했던 토모하루의 전략이었어요. 1990년대 일본 아이들 사이에선 특촬물*이 유행했거든요. 초코바의 색깔인 ‘블랙’과, 후레시맨의 능력 중 가장 세 보이는 ‘썬더(번개 공격)’를 합친 거였죠.
*특수촬영 기법을 사용한 영상물. 일본에선 주로 슈퍼히어로물이나 괴수 시리즈를 일컫는다.

야심작 블랙썬더는 잘 됐을까요? 전혀요. 다음 챕터에서 이어 나갈게요.

블랙썬더는 쿠키와 쌀 퍼프의 바삭한 식감을 강조했다. 가격이 기존의 초코바보다 비싸다는 점이, 기존 타겟인 0~10대 아이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유라쿠제과

Chapter 2.

사장의 생산 중단을 막은 영업 사원

1994년 블랙썬더가 처음 나왔을 때의 가격은 30엔(약 290원)이었어요. 사이즈도 작았어요.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였죠. 하지만 판매 성과는 저조했어요.

세 가지 원인이 있었죠. 당시 아이들 과자 치곤 비싼데*, 성인 간식으로는 너무 저렴했죠. 게다가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포장지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블랙썬더, ‘싸구려’라는 별명까지 붙습니다.
*당시 아이들을 겨냥한 과자의 평균 가격은 10~20엔 선이었다. 블랙썬더는 비교적 저렴한 견과류와 캐러멜 대신, 쿠키와 쌀을 채우는 데 비용을 들여 경쟁 제품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쌌다. 

회사 내부에도 ‘반대 여론’이 강했습니다. 실무자의 불만이 폭발했죠. “팔리지도 않는데 일만 늘었다”, “블랙썬더 포장의 검은색 원료가 청소 시간을 더 잡아먹는다”면서요. 결국 회사는 블랙썬더를 내놓은지 1년 만에 ‘생산 중단’을 결정합니다.

이때 결정을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어요. 유라쿠제과 규슈 지부의 영업사원 모리조노森園さん였죠. 직접 도쿄 본사의 사장실에 찾아가, 토모하루의 면전에 대고 이야기합니다.

“생산 중단이라니, 진심이십니까? 블랙썬더는 맛있고, 미래에도 잘 팔릴 상품입니다!”

모리조노가 이렇게까지 확신한 이유는 뭘까요? 그는 블랙썬더가 안 팔린 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겟팅이 잘못됐기 때문’이라 봤어요. 나름의 근거가 있었죠.

규슈를 누비며 블랙썬더를 팔던 모리조노는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합니다. 바로 아이들보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제품을 더 자주 찾는 모습이었어요. 

그는 생각합니다. “이건 아이들을 위한 초코바가 아니라, 청소년과 청년을 배불리는 초코바로 홍보하면 통할 수 있다”고. 이게 모리조노가 사장에게 건넨 아이디어였습니다.

유라쿠제과의 영업사원 모리조노 씨는 1994년 당시 딸에게 쓴 편지에서 “생산 중단이 매우 짜증 난다”고 적었다. ⒸMr.Sunday

Chapter 3.

운은 얻는 게 아니라 끌어오는 것이다

블랙썬더의 대안이 없었던 토모하루. 직원을 믿어보기로 한 뒤 1995년 생산을 재개해요. 영업사원 모리조노도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곧장 규슈 지역 ‘대학생 협동조합*’에 블랙썬더를 가져갔죠. 그의 전략이 먹혀 블랙썬더는 규슈의 50개 대학 매점에 진열됩니다.
*한국의 대학 생협과 같다. 일본은 조합이 발달해 지역, 대학 조합원으로 가입해 공동구매를 하는 생활 방식이 활발하다.

모리조노의 호언장담 대로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대학생들이 블랙썬더를 사 먹기 시작했거든요. 아이들 과자치곤 비싸지만, 대학생에겐 부담 없는 가격이었거든요. 거기에 배까지 채우는 효과를 줬죠. 

블랙썬더가 더 큰 파도를 탄 건 2005년부터입니다. 100만 부 베스트셀러 『생협의 시라이시상生協の白石さん』이 계기였죠. 대학생들이 생협 의견 카드에 적은 건의사항에, 저자가 답장한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저자의 진심 어린 답변에 감동한 독자들이 입소문을 내줬죠.

그런데 이 책에서 유독 블랙썬더가 자주 언급됐어요. “밥을 거르는 대신, 블랙썬더를 먹고 힘을 낸다. 앞으로도 계속 팔아달라”는 식으로요.

대학생만 눈독 들인 게 아니었어요. 스포츠 선수들도 블랙썬더를 간식으로 찾았죠. 그중 한 명이 일본의 전 기계체조 선수 우치무라 코헤이内村航平*예요. 블랙썬더를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고 밝혔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자, 선수의 어머니가 꽃다발 대신 블랙썬더를 던져줘 화제였고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개인종합 은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개인종합 금메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개인종합 금메달을 따 3연속 메달리스트로 인지도를 넓혔다.

덕분에 블랙썬더는 ‘어른의 든든한 간식’이 됐어요. 2005년부터 8년 사이 출하량이 세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모리조노의 ‘타겟 변경’이 성공한 거죠.

유라쿠제과 마케팅부에서 2013년 공개한 블랙썬더 판매 그래프. 2005년 이후 대학생, 스포츠선수에게 알려지며 매출이 급상승했다. Ⓒ유라쿠제과

Chapter 4.

마케터 자처한 3대 사장이 바꾼 것

유라쿠제과는 블랙썬더의 인기를 ‘신상품 출시’로 이어가려 했습니다. 새 공장을 짓고, 10가지 맛의 블랙썬더를 내놓았거든요. 헤이즐넛부터 피넛, 만주 맛 등이 있었죠.

하지만 고객의 반응은 또다시 기대와 달랐습니다. 신상품을 내도, 반응은 금세 사그라들었어요. 신상품을 계속 내놓지 않으면, 매출을 지킬 수 없었어요. 그 주기는 점점 빨라졌죠. 자연스레 성장은 둔화했고, 브랜드 파워는 고갈됐습니다.

위기감이 돌던 2010년, 유라쿠제과는 리더를 바꿔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3대 사장 가와이 타츠노부河合辰信입니다. 원래 그는 가업과 무관한 IT 엔지니어로 살았어요. 하지만 승계를 준비하던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35세에 유라쿠제과 3대 사장 자리를 맡았죠. 

낙하산 사장의 등장, 직원들의 눈초리는 따가웠습니다. 타츠노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세웁니다. 섣불리 권력을 장악하는 대신, 자세를 낮추기로 해요. 마케팅 부서를 만들고 스스로 ‘사장 겸 마케터’가 됐죠.

**“경영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건, 제게 약점이 아닌 ‘기회’였습니다. 당시 회사 분위기는 너무 딱딱해 보였어요. 이런 상태라면 매출 회복이 어렵다 생각했죠. 그래서 저부터 ‘제1의 마케터’가 되기로 했어요.”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4년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인터뷰에서

유라쿠제과의 3대 사장 가와이 타츠노부. 미국에서 유학하던 그는 글로벌 IT 서비스기업 시스코에 입사할 예정이었으나, 형의 사고사로 가업을 물려받았다. Ⓒ유라쿠제과

마케터 사장, ‘소소한 낭만 지키기’를 마케팅하다

마케터가 된 타츠노부가 가장 먼저 바꾼 건 ‘발렌타인데이 마케팅’이었어요. 그는 먼저 발렌타인데이의 분위기와 블랙썬더의 가치를 냉정하게 분석했죠. 

“저는 블랙썬더가 초코바니까 발렌타인데이에도 잘 팔릴 줄 봤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그렇지 않더군요. 이유를 찾으니, 수천 엔 넘는 고급 초콜릿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고급 초콜릿을 살 때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발렌타인데이 취지인 마음을 주고받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죠.”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4년 Impress 인터뷰에서

그래서 타츠노부는 고정관념을 뒤집었어요. 블랙썬더를 ‘한눈에 봐도 의리를 알 수 있는 초콜릿’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죠.

무슨 뜻이냐고요? 초콜릿을 꼭 사랑하는 연인이나 고백하려는 사람에게만 줄 필요가 없단 거였어요. 즉, 회사 동료나 지인에게 저렴한 초콜릿을 선물해 ‘의리를 지키자’는 거죠. 

타츠노부는 일부러 ‘가벼운 재미’를 주는 발렌타인데이 한정판 블랙썬더를 내놓았습니다. ‘동전 하나로도 마음을 재밌게 전할 수 있다’는 취지였죠. 

2013년에는 2월 14일이 ‘멸치의 날’과 겹친다는 걸 이용해, 육수용 멸치 포장팩에 넣은 블랙썬더를 내놓았어요. 2019년 발렌타인데이엔 신주쿠의 우동 가게를 빌려 ‘블랙썬더 덴푸라(튀김)’를 내놓고, “집 가는 길에 포장해 가라”며 1만 명에게 팔았죠.

그 뒤로도 블랙썬더가 발렌타인데이마다 내놓는 한정판은 ‘완판’ 행진을 기록했어요. 

**“세상의 일반적인 방식을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TV 광고 같은 홍보 방식이 ‘왕도 마케팅’이라면, 우린 ‘비왕도’를 걸어왔다고 볼 수 있죠. 돈을 쏟아붓는 마케팅은 뭘 하든 자금력이 있는 기업이 이깁니다. 우린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2년 Agenda Note 인터뷰에서

유라쿠제과가 신주쿠의 우동 체인에서 판매한 블랙썬더 튀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포장해가는 튀김에 초코바를 넣어, 발렌타인데이용 튀김으로 홍보했다. Ⓒ유라쿠제과

Chapter 5.

‘살짝 프리미엄’으로 한계를 뛰어넘다 

가와이 타츠노부 사장의 다음 행보는 ‘라인업 재점검’이었어요. 그동안 블랙썬더는 아몬드, 캐러멜, 커피, 티라미수 등 온갖 맛을 내놓았어요. 매출을 늘리려고 ‘일단 만들고 본’ 라인업이었죠. 

**“고객이 원하지 않는데 무작정 다양한 맛을 내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라인업만 늘릴 게 아니라, 한번 내놓으면 오래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만들기에 도전하기로 했죠.”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2년 닛케이 엑스트렌드 인터뷰에서

2020년 타츠노부는 ‘프리미엄 라인업’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단순히 가격을 올리겠다는 게 아니에요. 고객이 먹으면서 ‘색다른 경험을 한다’고 느끼게 하려 했죠. 

저렴한 과자를 파는 회사가 프리미엄을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요? 사실 딱 10엔을 올리는 정도였어요. 프리미엄 제품의 가격은 50엔(약 480원). 사람들이 선망하는 고급 재료를 초코바에 아주 조금 섞어, ‘풍미’만 살린 거예요. 

맨 처음 내놓은 프리미엄 제품은 ‘행복한 버터맛’이에요. 다크초코에 버터를 섞고, 군데군데 굵은 암염*을 넣어 단맛과 짠맛을 동시에 느끼게 해요. 달고 바삭하기만 한 블랙썬더보다 다채롭죠.
*해수를 증발시켜 만드는 정제 소금과 달리, 소금 광산에서 채굴한 소금. 히말라야 핑크 솔트가 대표적이다. 미네랄이 포함되어 약간의 단맛, 쓴맛, 감칠맛이 느껴진다.

이듬해인 2021년엔 ‘지복*의 버터맛’을 내놓았어요. 버터 풍미를 더 살린 제품이에요. 프랑스산과 홋카이도산 발효버터를 넣었죠. “초코바에 감칠맛이 난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더없는 행복.

‘살짝 프리미엄’을 만드는 전략, 시장에서도 반응했어요. 행복한 버터맛은 1년 만에 390만 개를, 지복의 버터맛은 1000만 개를 팔아치웠거든요. 예상 출하량의 1.4배를 기록했죠. 

유라쿠제과는 하나에 50엔인 프리미엄 블랙썬더를 선보여 컬렉션을 넓혔다. 발효버터나 암염을 넣어 풍미를 살리는 식. Ⓒ유라쿠제과

저렴한 초코바, 레거시 브랜드에 침투하다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타츠노부는 블랙썬더를 유명 제품의 ‘속 재료’로 침투시킵니다. 70년 전통의 화과자는 물론 패스트푸드 체인, 편의점과 손잡고 블랙썬더를 넣은 음식을 내놓은 거예요.

**“여전히 ‘초코바는 싸구려’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에게,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려 했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고객에게 ‘화제의 씨앗’을 제공하는 거죠. ‘어쩌다 블랙썬더를 먹어봤는데 맛있더라’는 이야길 퍼뜨리는 거예요.”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4년 Impress 인터뷰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건 70년 전통 화과자점과의 협업이었어요. 나고야 아이치현의 ‘오카메도’와 2017년 만든 ‘블랙 썬더 앙금말이빵’ 이야기죠. 

바삭바삭한 초코바 앙금을 쫀득한 빵으로 말아 올린 컬래버레이션 제품이에요. 몸통에는 번개 모양 마크를 달았고요. 이 빵은 출시한 지 1년 6개월 만에 100만 개가 팔렸어요. “세상에서 제일 친근한 화과자”라는 평가와 함께요.

대중적인 브랜드에 침투해 블랙썬더를 맛보게도 했어요. 2017년 맥도날드와 함께 ‘맥플러리 블랙썬더’를 내거나, 2023년 패밀리마트와 손잡고 초콜릿 쿠키 샌드위치, 에클레어, 티라미수 등 ‘블랙 썬더풍 간식 5종’을 선보였죠.

**“시대에 따라 상품을 바꾸는 건, 브랜드가 꼭 해야 하는 일이에요. 다만 이 변화가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인지, 제조사의 자존심이나 매출 회복을 위한 변화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게 브랜드의 수명을 좌우하거든요.”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2년 닛케이 엑스트렌드 인터뷰에서

블랙썬더는 다양한 F&B 브랜드와 협업해 존재감을 알린다. 사진은 유라쿠제과와 오가메도가 손잡고 내놓은 블랙 썬더 앙마키(앙금말이빵). Ⓒ오가메도

Chapter 6.

“나부터 공짜 재료가 되겠다”는 리더

결국 가와이 타츠노부 사장이 15년간 바꾼 건, ‘블랙썬더의 이미지’였어요. ‘싸구려 과자’라는 이미지를 역이용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과자’로 바꿨죠. 

이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타츠노부가 직원 귀가 닳도록 당부한 한마디 덕분입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저를 공짜 소재로 쓰세요.”

“만약 CEO인 제가 직접 광고에 나오거나, 행사 도우미로 나설 때 효과가 있다면? 꼭 써달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짜 재료’라 항상 말하고 있죠. 

**사장이 직접 나서서 뭐든지 한다는 게 화제가 되면, 홍보뿐 아니라 입사 지원자도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요.”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2년 Dime 인터뷰에서

빈말이 아니에요. 직원이 신제품 아이디어를 들고 가면, 타츠노부가 직접 ‘체험 모델’이 되거든요. 회사나 인터뷰 자리에서 ‘블랙썬더 머플러’를 두르는 것도 그래서예요. 그는 한 직원이 발렌타인데이 한정판으로 제안한 블랙썬더 포장지 디자인의 머플러를 보고, “나부터 모델이 되겠다”고 약속했죠.

“바보 같다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걸, 고객이 재밌네? 라고 느낄 때까지 마음을 다하는 거죠. 

**왜냐면 과자는 어디까지나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이거든요. 무조건 즐겨야 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고객 가치의 ‘전부’입니다.”
**_가와이 타츠노부 유라쿠제과 CEO, 2022년 테레비아사히 인터뷰에서

가와이 타츠노부는 자신을 ‘공짜 재료’라 부른다. 직원이 시제품을 만들면, 얼마든지 홍보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것. ⒸAgenda Note

이런 리더의 행보 덕에, 직원들은 “창의적인 기획을 쏟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아이디어 초안을 들고 ‘사장님, 이거 괜찮으세요?’라는 식으로 먼저 물어봐요. OK가 나오면 관련 부서와 회의를 통해 정식으로 결정하죠. 근데 뭐, 결정하기 전에 대부분 사장님의 OK를 받긴 하지만요.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담당자 레벨에서 여러 차례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장님에게 가져가면, 뾰족한 기획도 가시가 빠지고 둥글둥글해지거든요.”
**_스기타 아키히로 유라쿠제과 마케팅팀 유통영업부 부장, 2022년 Mynavi 인터뷰에서

규모가 큰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고개를 갸웃하실 겁니다. 별다른 절차 없이, 사장에게 곧장 아이디어를 꺼낸다는 게요. 이게 가능한 건, ‘질문만 던지는 사장’이 마케팅실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희 회사는 소위 ‘소통의 환기’가 잘 된다고 해야 할까요. 사장실이 없어요. (마케팅팀원인) 제 바로 뒤에 사장님 자리가 있죠. 제가 책상에 샘플을 늘어놓고 있으면, 사장님은 그저 ‘마키, 그거 뭐야?’라고 물어오실 뿐이에요.”
**_마키 히로로 유라쿠제과 마케팅부 기획과 광고홍보계 계장, 2022년 Mynavi 인터뷰에서

사장은 직원의 의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도, 조언하지도 않아요. 질문을 던진 뒤 반응을 보일 뿐이죠. 아이디어가 샘솟는 직원들과, 그 아이디어에 반응하는 사장. 이게 유라쿠제과의 핵심 경쟁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케팅팀과 일하고 있는 가와이 타츠노부. 그는 15년째 사장실 없이,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참신한 아이디어에 반응해 준다. ⒸBiznote

롱블랙 프렌즈 K 

블랙썬더를 분석하며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의 조건을 생각해 봤어요. 연봉과 인지도도 중요하겠지만, 내 의견을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게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롱블랙 피플, 블랙썬더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지인이 떠올랐나요. 아래 24시간 무료 링크를 공유해보세요. 400원짜리 초코바는 아니지만, ‘10분의 재미’를 줄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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